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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은 일상에서 얻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주기도 하며

미세먼지 등 쌓여있는 피부 노폐물들을 씻어내기도 하는

현대인들의 상쾌한 하루를 마감하는 중요한 의식이기도 하다.




목욕하는 방식은 지역별로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민족별, 시대별 목욕문화는 각 문화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관과 자연환경 행동양식에 따라

변천하고 발전해오고 있다.




<로마는 목욕탕 때문에 망했다>

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제정 로마는 화려한 목욕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은 천혜의 자연인 온천을 활용한 

<노천욕> 문화가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코로나 직전

온천 여행을 다닐 정도로 일본의 온천은

가히 전매특허급이라고 할 수 있다.


 

 



사막 모래바람과 장거리무역으로

생활한 아랍권의 경우

<하맘>이라는 독특한 목욕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핀란드, 러시아 등 겨울이 혹독하기로 유명한

북유럽에서는 기후 영향으로

독창적 <사우나> 문화가 발전 해 왔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물을 이용하여 목욕을 해왔지만

향토 문화에 따라 진흙, 우유, 모래를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원유로도 목욕을 해왔다고 한다.


이와 같이 다양한 목욕문화가 생겨난 이유는

각 지역별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인 것이다.




동양권 Oriental

대한민국

목욕의 사전적 의미는 

<머리를 감으며 온몸을 씻는 것>을 의미 한다.



목욕재계는 <제사를 지내거나 신성한 의식을 행할 시 목욕으로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부정을 피하는 것>을 뜻 한다.


신라시대는 목욕재계를 

계율로 삼는 불교로 인해

목욕이 습관화 및 대중화 되어 었었다.


절과 같은 사찰에선 대형 공중 목욕장을 설치 하였고

일반가정에서도 목욕시설을

별도로 마련하고 목욕재계를 통해

마음의 죄를 씻어내는 자기정화 의식을 하였다고 한다.
 

죄를 진 죄수에게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뜻에서

<목욕벌>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목욕은 

신라시조 박혁거세가 담쟁이 덩굴로

덮힌 우물가에서 태어나 동천(東川)에서 

목욕후 광채가 발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석조욕조는 

왕족들 전용 야외 욕조였다고 한다.

이 석조욕조는 바닥 배수설비와 

등받이 여과장치까지 갖추어져 있다고 하니

꽤나 첨단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증기를 이용한 증기욕이

발달하면서 일본에 전파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기록은 일본문헌 <先ぅ風俗史>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목욕문화가 

서민들 생활로까지 확대 되는데

이전까지 제사 등 주술적인 목적으로 목욕을 했다고 하면,

고려시대엔 질병치료 및

예방 차원에서 목욕을 하였다고 한다.



<고려도경>에  고려인은 하루에 3~4 차례 목욕을 했으며

개성의 큰 내(川)에서는 남녀가 함께 

어울려 혼욕을 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이런 기록은 고려가 대외적으로

개방된 사회였으며,

그 만큼 성문화 또한 비교적

열린 사회였던 것을 알 수 있는 대목.

상류사회에선 어린아이의 피부를 뽀얗게

하기 위해 복숭아 꽃을 물에 띄어

목욕하는 입욕제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고려사절요>에는 역대 왕들이 온천행사를 즐겼으며,

병이 든 신하에게 온천욕을 권장한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하지만 조선시대 들어서

유교사상은 남녀의 혼욕과

알몸 목욕문화를 불경한 행위로 여겼다.




그래서 왕실과 양반가에선 몸을 씻을때에는

목욕전용 의상을 입고 전신욕을 했다고 한다.

목욕의 정도도 함지박과 대야를

이용해서 물을 끼얹는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개별가옥에 목욕실 또는 목욕탕을 따로 두지 않고

정방(淨房)이라 불리는 목욕소를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궁궐에서는 세숫간 나인이 목욕물을 별도로 준비했다고 하는데

조선의 목욕 문화는 대부분 부분욕으로

<낯씻기><손씻기><발씻기><뒷물><이닦기><머리감기> 로

구분 할 수 있었다.


이중 매일 <낯씻기><이닦기><뒷물>을 하였으며,

수시로는 <손씻기><발씻기>를 하였다 함


조선 목욕풍속은 대부분 부분욕이었기에

전신욕은 연례행사로 행해 졌다고 한다.


전신욕을 하는 시기는 음력 

<3월 3일><5월 5일><6월 15일> <7월 7일><7월 15일>

이었다고 한다.


전신욕을 하며 사용한 대표적 입욕제로는

인삼잎 등을 달여 넣은 <인삼탕>과

찐마늘을 식초와 함께 섞은 <마늘탕>이 있었고

창포를 넣은 <창포탕>

복숭아 잎을 넣은 <복숭아잎탕> 등이 있었다.


혼례를 앞둔 상류층 신부들에게는 

난으로 은은한 향내를 내게 하는

<난(蘭)탕>을 하였다고 한다.


조선의 왕들은 온천욕을 즐겼는데 

황해도 평산군에 있는 평산온천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에는 

태조, 세종, 세조가 온양온천에

머무르며 유숙을 하였다고 하고 

승정원일기에는 3일이나 7일 보름에

한번씩 목욕을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한증욕이란 흙 또는 바위 등을

불로 달군 후 멍석 또는 가마니를

깔고 눕거나 앉아, 땀을 내는 방식으로 

현대의 불가마와 비슷한 모습을 띈다.


한증욕 풍습은 산야초(감나무순 밤나무순)를 

끓여 수증기를 쬐는 방식으로 발달하였다.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부산 동래를 시작으로

일본식 온천장이 개발되기 시작 하는데

1905년 서울 서린동에 최초 문을 열었던 대중목욕탕은

낯선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고 

목욕을 한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하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곧 폐업하고 말았으나

이후 1920년대에 비로소 

대중목욕탕은 정착되어갔고

1962년 최초의 한증막이 생겨나며 오늘에 이르게 됐다.


1970년대 아파트가 대량 보급되면서 현재와 같은 가정 욕실이

자리매김 하게 됨



우리 나라만의 독특한 

때밀이 문화는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외국인들에게도 호응을 얻어 관광 상품화 되었다고 한다.

1993년 한국형 사우나와 때밀이 문화가 일본으로 수출되었으며,

실제로 일본의 조금 크다고 하는 온천, 목욕탕에는

한국풍 때밀이 맛사지가 존재한다.



때를 밀 때 사용하는 일명 <이태리타올>은

1964년 부산 온천장에서 일본관광객이 버린 꺼칠꺼칠한

수건에서 힌트를 얻어 제작 되었다고 한다.


이태리타올이란 이름은 

이 원단을 만드는 <이태리식 연사기>란

기계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


일본인들은 목욕을 특별히 사랑하는 민족이다.

일본인이 생각하는 목욕문화는 

<하루 일과를 마친 뒤 피로를 풀고

정신을 새롭게 가다듬기 위한 의식> 이라고 생각 한다고 한다.



일본에선 아침에 목욕을 하면 

게으른 사람으로 인식 한다고 한다.

그래서 대중 목욕탕도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한다.

어찌보면 한국과는 정 반대의 느낌.

일본에서 목욕은 단순 청결이 아닌 

따듯한 물에 몸을 담가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힐링의 시간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


오죽하면 일본인 단체관광객이 

오면 호텔내 뜨거운 물이 모두 동난다는 

프랑스 한 호텔관계자의 하소연이 있을 정도니..



고대 일본 신화를 기록한 <고지키(古事記)>에는

이자나기 미코토가 황천으로 죽은 아내를 찾으러 갔다 돌아와서

흐르는 물에 몸을 씻었다는 내용이 있다.


<센토>란 일본 전통 공중목욕탕을 말한다.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남녀 혼욕을 했었다고 한다.


<온천>은 25도씨 이상의 미네랄을 함유한 지하수를 이용한

공중목욕탕을 뜻한다.



<료칸>은 방안에 목욕탕을 갖춘 ‘우치부로’와

‘대욕탕’ 즉 공중목욕탕을 갖춘 곳을 뜻한다.


곳에 따라 자연과 동화되는 노천탕이 있는 곳도 존재 한다.

 

 

 




일본 가옥은 우리처럼 온돌 난방이 존재하지 않는다.

추운 겨울 우리는 바닥 온돌로 난방을 하면 되지만

일본은 목욕을 통해 몸을 따듯하게 데운 뒤

 열기를 간직한채로 이불 속에

쏙 들어가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욕탕에 입욕하는 것을

‘몸안 깊은곳까지 뜨겁게 데우는 것’ 이라 생각 한다고 한다.




일본에선 욕탕에 물을 받으면 

온가족이 함께 그 뜨겁게 데운 물을 이용하는데

가정에서 욕탕에 입욕하는 순서로는

제일 먼저 집안의 가장이

들어가고 그 다음 가장의 부인, 자녀들, 며느리 순서라고 한다.

그런데 손님이 있을 경우 손님에게 먼저 사용하도록 한다.



이런 일본 욕탕문화로 목욕물 온도가 식지 않도록 욕조를 덮는

덮개가 생겨 났다고 하며, 요즘엔 욕조 자체에 목욕물 온도를 일정하게

맞춰주는 센서가 개발되었다고 한다.

 

중국

<중국인은 잘 씻지 않는다>

<중국인은 일주일에 한번 머리를 감는다>

우리가 중국인에 대해 갖는 선입견들인데

아무튼 중국은 지역마다 목욕문화가 매우 다르다고 한다


북부지역과 사막지역 등은 물이 워낙 귀하기에

실제로 목욕을 잘 하지 않았다고 하고


남부지역이나 온천이 있는 지역은 강수량이 풍부해서

넘치는 물로 대체로 잘 씻는 편이라고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지만...


중국 북부는 건조한 기후의 영향으로 목욕보다는

마사지 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인도



인도에서는 물을 신성하게 여겨 

목욕을 최고의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법이라 생각 한다고 한다.



인도 힌두교에서는 

갠지즈강을 신성시 해

년중 몇 번씩이라도 

자신의 더러움을 씻어내고 깨끗함을

얻기 위하여 갠지즈 강물에서 목욕하는 것을

중요한 의식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강에 몸을 씻을때도 머리는 

항상 동쪽을 향해야 하고

만다라를 입으로 외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목욕을 하는 동시에 강물을 마심으로

비로소 몸이 정화되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인도 이슬람 사원 앞에는 

목욕장이 있어 사원에 참배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목욕을 한 후 

사원에 들어와 기도해야 하는 계율이 존재한다.




이렇듯 인도인들은 

종교적 영향으로 청결한 목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나...

갠지즈 강물의 오염도의 심각성은 왠만해서는

잘 알고 있기에...




인도인들은 허브를 넣어 

끓인 물로 머리를 감았다고도 전해진다.


18세기 영국인들은 머리를 

잘 감지 않는 습관이 있었는데

인도인들 머리 감는 모습을 보고는

그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영어 Shampoo의 뜻은<누르다><마사지하다>라는 뜻으로

그 어원은 힌두어 Champo에서 나온 말이라고 전해진다.

1편으로 전세계의 목욕 문화 중 동양권의

목욕문화에 대해서 몇글자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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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게 뭔가를 찾으려고 하면

생각처럼 잘 찾기 힘든게 보통인 것 같다.


온천도 그렇다.

어떻게든 찾으려고 노력하면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다가 관심 없을때

갑툭튀 하듯이 나오는 것이 온천인 듯 하다.


특히 대도시 같은 도쿄, 오사카의 경우는

정말 갑자기 온천을 찾으려고 하면

쉽게 찾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이번에 찾았던 온천 또한 지난 포스팅에서도 언급된 장소지만

이번에는 실제로 다녀와서 사진으로 다 남겨 온 이야기이다.



자연 공원으로 유명한 츠루미료쿠치 공원

오사카 메트로 츠루미료쿠치 역에서 내리면 된다.


일일 정기권을 끊고 왔다갔다 하면 오히려

훨씬 저렴하고 알뜰하게 다녀올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일일 정기권을 끊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오사카 메트로 츠루미료쿠치 역에 내리면

뭔가 부유한 동네의 느낌이 물씬 풍겨지는 곳에

바로 보이는 츠루미료쿠치 유모토 스이슌.

온천이 바로 눈에 들어 온다.


이 곳 츠루미료쿠치 역 뒷편으로는 거대한

자연공원국제 꽃 박람회가 열렸던 공간이 있기에

봄, 가을에 이 곳 역에서 공원으로 방문을 한다면

한결 풍부한 벚꽃과 단풍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단독 건물로 잘 지어진 온천.

그리고 거대한 주차장.

밤이어서 느낌이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고즈넉한 공원 반대편에 위치한 온천인 만큼

단풍놀이, 벚꽃놀이를 충분히 만끽한 직후

여독을 풀어주기 위해 온천으로 달려간다면 정말 딱일 듯 하다.



온천 건물이라고 하지만 굉장히 컸던 느낌이

바로 이렇게 헬스클럽도 운영중이었다.


이 곳의 처음 이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신발을 락커에 보관한 후 바코드가 있는 저 열쇠로

잠근 후에 열쇠를 들고 들어간다.



이 다음은 티켓 키오스크 자동 발매기

통하여 구매하여야 하는 시스템이다.

남성은 남성에 체크. 여성은 여성에 체크를 한다.


참고로 바코드 인식하는 란이 있는데

신발 열쇠키이용하여 바코드를 찍은 후에 

성별 및 갯수, 날짜를 선택하면 된다.


참고로 평일 가격과 주말가격이 상이하다.


조금은 일본어가 안된다면 사용하기 어려운 방식일수도...





그렇게 바코드에 인식이 되어서 바로 영수증이 나온다.

그렇다면 요금은?

바코드에 적립이 되어서 퇴실하기전에 정산한 후

납부하는 후불 시스템이다.

신발키가 모든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ID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를 하자.



역시 온천이라고 하는 만큼

온천 건물 내에는 이렇게 거대한

식당 코너 스낵과자류.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공간이 자리잡고 있었다.


더불어 방문한 날짜가 주말이니 만큼

가족단위의 이용객들이 굉장히 많았던 점 또한

특이했었다.



1층이 응접실, 식당, 기념품 과자 가게 등이

몰려 있다면, 2층으로는 이렇게 걸어서 올라가면

온천장을 만날 수 있다.



오사카 츠루미료쿠치 스이슌 온천

특징 및 장점성분표를 붙여놓은 포스터.

이것만 봐도 이미 온천 물의 품질은

이미 검증됐다고 할 수 있으며, 그 만큼

우리 온천이 짱짱임! 하고 홍보하는 느낌이

물씬 풍겨진다.



남탕과 여탕이 나뉘어져 있어서 

파란색은 남탕, 빨간색은 여탕으로 가는 길이다.

안에서 옷을 탈의 한 후에는

본인의 취향대로 온천을 즐기고 피로를 푼 후에

다시 나오면 된다.


개인적으로 노천탕도 깨끗히 잘 되어 있었으며, 

물의 품질도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너무 늦은시간에 방문해서 그런지

식당은 거의 다 끝났으며, 스낵코너 정도만

열려 있으나 가능한 메뉴는 거의 없었던 기억.




우리나라는 큰 대중탕도 이정도의 규모로

식당이나 스낵바 등이 없는데

그 만큼 온천욕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어서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토,일,공휴일 가격 900엔.

그리고 온천욕을 끝내고 피로를 푼 후에

마시는 커피우유 한개 110엔.

그렇게 다 합해서 1010엔이라는 금액이 나왔다.


모든 계산 및 정산출구 앞에 마련되어 있는 자동 키오스크 정산기

통하여 정산을 한 후에 나가면 된다.

바코드 열쇠로 바코드를 찍은 후에 표시된 금액을 결제를 하면

정산이 완료되면서 영수증이 발매될 것이다.


아울러 나갈 때는 정산이 완료된 바코드 열쇠를 

출구쪽 개찰구에서 찍으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기 때문에

정산한 뒤에도 바코드 열쇠는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소 일본어가 불가능한 분들의 이용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물도 좋고

분위기도 썩 괜찮았던 츠루미료쿠치 온천.


일본 봄꽃 여행 혹은 가을 단풍 여행을 생각한다면

꼭 들러보길 추천한다.




오사카 지하철 나카호리츠루미료쿠치선 츠루미료쿠치 역에서 바로 보임.

난바역 기준 츠루미료쿠치 역까지 약 20분 정도 소요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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